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 | 박지훈 눈빛 연기와 장항준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오프닝 The King's Warden
하지만 자신을 지켜줄 세력이 없던 소년 왕은 숙부인 수양대군과 그의 책사 한명회가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잃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쫓겨난다.
영화는 유배지 청령포에서 단종 이홍위가 만난 촌장 엄흥도, 마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따듯하고 슬픈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보여준다.
박지훈 눈빛 연기와 장항준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오프닝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오프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짧은 오프닝이지만 앞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갈 인물이 누군지, 어떤 성격인지, 영화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지 간결하게 보여준다.
단종 이야기를 하려면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 세조와 한명회를 악역으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한명회(유지태)만 단종과 대립하는 인물로 세운다. 그리고 세조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하려는 것은 ‘왕과 살고 싶지 않은 남자’ 세조가 아니라 제목처럼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와 단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프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종 역할을 맡은 배우 박지훈의 눈빛 연기다. 스크린 가득 담긴 야윈 얼굴과 그렁그렁 흔들리는 눈빛은 어린 왕이 그동안 겪어 왔을 처연함, 미안함, 슬픔의 서사를 긴 설명 없이 한 번에 전해준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라고 체념한 듯 묻는 단종의 말과 함께 카메라는 그가 유배 가게 될 강원도 영월로 날아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엄흥도를 보여준다.
단종과 한명회의 대립으로 무거웠던 궁궐 장면과 달리 경쾌한 음악과 시원한 강원도 산골 풍경으로 영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오프닝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인터뷰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이 전반부 부분이 조금 아쉽다고 했고, 장항준 감독도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이 느껴져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찍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단종의 물음과 함께 궁궐에서 강원도로 화면이 바뀔 때 영화관이라 마음속으로 ‘와~ 이 화면 전환 오프닝 좋다!’라고 외쳤는데, 같은 장면을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도 있구나 싶어서 흥미로웠다.
오프닝이 왜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숨통이 트여서였다. 밖에서는 고문받는 신하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앞에는 예의를 차린 듯 보이지만 왕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한명회가 서 있다. 한숨도 내뱉기 힘든 그 방에서 떨고 있는 어린 왕을 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밝은 음악과 함께 탁 트인 영월 산골 풍경이 나오고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이 조잘거리는 모습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이들을 만나면 이홍위도 산송장이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숨 쉬고, 떠들고, 배고프고, 먹는 생생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비록 그 끝에 정해진 슬픔이 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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